
야. 1학년 쪼꼬 기억 나냐?
서툰 고백
규겸
곧 개강을 알리는지 선배들의 호출 수가 늘어났다. 단언컨대 석민은 개강을 하기 전에 선배들의 호출을 통해서 술에 죽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체대 생활은 예전과 많이 달랐지만 그대로 안 보이는 곳에서 이뤄지는 군기와 술 문화는 석민을 힘들게 했다. 석민은 남들에게 미움 받는 걸 싫어했다. 자신의 선에서 가장 최선의 선을 찾아야 했다. 환경 탓이 가장 컸다. 순한 얼굴에 따라서 사람들이 거는 기대치가 높았기에 석민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시에 자신에게 오는 큰 원망을 받아드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착해지기로 했다. 그래서 이런 술자리나, 과대와 같은 자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운동을 시작한 것도 순한 인상을 바꾸기 위해 시작했지만 제 바람과 다르게 여전히 그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운동부 호구라고 불릴 정도로 선한 모습을 유지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 모습이 익숙해졌기에 남들보다 자신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대하던 사람이 있는데 그 선배는 얼마 전에 휴학을 했다. 권 선배는 유일하게 석민의 속을 아는 사람이었다. 선한 가식적인 석민의 모습을 보고 귀찮지 않냐. 라고 물어보며 처음으로 자신을 적대한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선한 모습을 적대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석민은 권 선배를 동경했다. 아니, 사랑이라 느꼈다. 자신의 모습을 알려진 게 부끄럽기도 하면서 권 선배가 더 알아주길 바랐다. 그러나 권 선배는 자신에게 말도 없이 휴학을 해버렸다. 오늘 술자리도 권 선배의 휴학 파티라고 했다. 석민은 순영의 맞은편에 앉아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에 있는 술만 마셨다. 술을 잘 하지 않아서 금방 취기가 올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앞에 앉은 순영은 석민의 팔을 톡톡 치더니 고개를 까딱인다. 신발을 구겨 신고 순영을 따라 나섰다. 입에 담배를 문 순영은 가로등 밑에서 무미건조한 얼굴로 물었다.
“야. 1학년 쪼꼬 기억 나냐?”
기억 못할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순영을 봤다. 순영은 입에 머문 담배 연기를 뱉으며 석민과 시선을 마주했다. 쪼꼬, 그 새끼 이번에 복학한대. 순영의 헛웃음에 석민은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와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 놈은 자신을 쪼꼬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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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회 체육학과 16학번 김민규입니다. 시원시원한 얼굴로 주위에서는 꽤나 인기가 많았다. 동족혐오라고 하나,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민규의 관심에 석민은 이상하게 배알이 꼴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열등감에 가까웠다. 까치발을 한 채 옆에 있는 민규와 키를 맞추자 그제야 비슷해진다. 고개를 돌려 저를 보던 민규가 픽 웃었다.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다. 앞에 있는 순영이 이번에 인상 좋은 둘이 왔다며 과대, 부 과대 어떠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던 민규는 저와 처음 본 사이이면서도 제 팔에 팔짱을 끼며 웃어댄다. 개 같은 새끼, 진짜 딱 대형견처럼 행동을 하는 민규는 제게 치대면서 이석민, 석민아. 꽤나 다정하게 이름을 불렀다. 나는 민규의 이름을 한 번도 부른 적이 없었다. 민규는 저와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민규의 테이블엔 선배들이 많았는데 가끔씩 들리는 쪼꼬라는 이름에 민규는 바보 같은 웃음을 내보였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저와 다르게 술을 잘 하는 민규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나는 술을 깨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때도 지금과 같이 운동화를 구겨 신은 채 쪼그려 앉으니 옆에 누군가가 섰다. 저와 다르게 반듯한 운동화를 신은 채 시원한 콜라를 들고 있던 쪼꼬, 김민규였다.
“근데 왜 다들 널 쪼꼬라고 불러. 초코도 아니고.”
“고딩 때부터 별명이었는데, 초코보다 쪼꼬가 더 귀엽잖냐.”
“안 귀여워.”
“그러냐.”
심술궂은 제 말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던 민규는 제 손에 콜라를 쥐어준다. 그리고 옆에 서서 담배를 물었다.
“와, 갓 성인 됐는데 벌써 담배도 피울 줄 알아? 나는 담배 냄새 때문에 못 피우겠던데.”
묻는 제 말에 민규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는 웃었다.
“아니, 사실 못 펴.”
그러고 얼마 안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 틈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민규를 보는데 배신감이 얼마나 느껴지던지, 석민은 자신에게만 보여주지 않는 민규의 다른 면을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싫었다. 민규가 자신을 불편해 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 같아서, 나는 더욱 민규가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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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복학한대요? 묻는 제 말에 어깨를 으쓱이는 순영은 자신과 바톤 터치지 뭐. 라는 농담을 하고는 제 어깨에 팔을 두른 채 가게로 들어간다. 시끄러운 가게 속에서 후배 놈이 먹으라며 초코 우유를 사왔다. 김민규, 초코. 김민규, 쪼꼬ㅡ쪼꼬 우유. 나는 후배가 준 초코 우유를 가방에 대충 욱여넣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안 좋아서요.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인 채 선배들에게 인사를 했다. 허리를 여러 번 굽히다보면 자신이 구겨 신은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흔들리는 몸에 힘을 준 채 신발장 앞에 주저앉아 구겨진 신발을 들어 발에 맞췄다. 꾹 눌러 신발을 신은 채 택시를 잡아 자취방으로 갔다. 오는 연락들을 무시했다. 간간히 보이는 친구들의 쪼꼬 왔다는데. 라는 카톡들은 읽고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어떤 얼굴로 맞이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이다.”
김민규와 우연히 만난 곳은 학교 앞 해장국 집이었다. 개강을 일주일 앞 둔 학교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고 특히 늦은 오전의 해장국집은 사람이 더 없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아픈 속을 부여잡고 겨우 온 곳에서 민규를 만날 줄 알았으면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을 걸. 저를 반갑게 맞이하는 민규는 손을 뻗어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제 팔을 부여잡아 억지로 맞은편에 앉힌다. 마주보고 먹는 밥이 불편했다.
“잘 지냈냐.”
“빨리도 물어본다.”
민규는 앞에 있는 해장국을 먹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으며 괜찮다는 듯 제 어깨를 쥔다. 그 잠깐 닿은 어깨가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나는 입술을 깨문 채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검은 머리였던 민규는 어느새 염색을 해 갈색 머리가 되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긴 했는지 덩치는 그때보다 커진 것 같았고 살도 많이 빠진 것 같다. 어딘가 변화가 된 너의 모습과 다르게 옆 창문에 비친 나는 그대로였다. 일 년 동안 나는 그대로였는데 너는 많은 변화를 했구나, 어색함 속에서 더 이상의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같이 숟가락을 내려놓던 민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저와 시선을 맞춘다. 너는 그대로네. 네 말이 나를 찌른다. 나는 네가 하는 모든 말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딱 몇 개월 전의 너를 그리워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 민규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제 옆을 걸었다. 여기도 변한 게 없다. 한숨 섞인 농담을 하던 민규가 제 어깨에 팔을 두른다. 김민규 그때보다 키도 컸네. 까치발을 했다. 예전에 비슷해진 키도 어느새 네가 조금 더 컸다. 익숙한 길을 지나 원룸이 가득한 골목에 들어오자 너는 제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금 더 빨리 걸었다. 제가 사는 원룸 옆 작은 골목 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흔한 길 고양이도 쉬지 않았다.
매미가 여름을 알렸다. 맴맴 우는 소리가 제 귀를 때린다. 더운 여름, 제 이마에 흐르는 땀과 머리 위에서 바로 내리 꽂는 햇빛들이 익숙했다. 꽤나 단호한 얼굴을 해보이던 너는 그제야 제 팔을 놓고 두 볼을 급하게 잡은 채 입을 맞췄다. 닿는 입술들이 뜨거웠다. 아까 박하사탕을 먹을 걸 그랬나. 혀를 섞진 않았지만 도장 찍듯 꾹 찍어내는 입술이 여러 번 맞닿고 떨어진다. 그리고 제 어깨를 끌어안는 쪼꼬가 우는 소리를 낸다.
“보고 싶었어.”
나는 팔을 들어 민규의 등을 어루만졌다. 민규야, 사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어. 나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서 너를 보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건 네가 그리웠기 때문에, 지금 익숙한 네 향이 제가 도망칠 수 없게 묶어놨기 때문에. 나는 울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여전히 불편했다. 네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겁이 많기에 너처럼 용감하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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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선배들 눈에 나면 좋지 않아서, 우리는 강아지 마냥 불러가는 대로 족족 나갔다. 그래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2시간 통학을 하는 너와 다르게 자취방을 구한 나의 집에서 너는 거의 살다시피 했다. 가끔 술기운을 빌려서 서로의 배를 맞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열에 들뜬 감정 속에서 우리는 의지할 곳이 없어 서로를 의지한다는 변명으로 서로를 찾았다. 물론 학교에서는 민규보다는 순영과 더 많은 시간을 붙어 있었다. 민규의 주위에는 사람이 많았고 차기 과대로 선배들이 민규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나는 민규의 모르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알았다. 순영이 나를 알 듯, 민규의 모습을 나 빼고 다 알았다. 담배를 못 피운다고 하던 민규는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같이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나처럼 무서운 영화를 못 본다던 민규는 버스가 끊겨 갈 곳이 없음 선배들과 디비디 방에서 무서운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민규는 내가 자신을 쪼꼬라고 부르는 걸 싫어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부르는 쪼꼬라는 애칭을 내가 부르기라도 한다면 표정을 굳힌 채 부르지 말라며 입을 맞춰댔다. 남들에게 친근한 애칭을 저에게만 부르지 못하게 만드는 건, 조금은 서운한 일이었다. 나도 너를 한 번이라도 다정하게 불러보고 싶어서 애들 틈에서 너 몰래 쪼꼬라고 말을 하는 건 꽤 비참한 일이었다. 동기들이 물었다. 너희 둘은 친하지?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동기들이 당연하게 김민규와 하는 것들을 나는 할 수 없었으니까.
“야, 우리 무슨 사이야.”
먼저 그 질문을 한 건 나였다. 또 불붙듯 섹스를 끝내고 샤워를 하고 나온 민규에게 물었다. 민규는 제 말에 얼굴을 붉힌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며 민규를 봤다. 우리 친구지? 다시 한 번 물었고 싸늘하게 식은 얼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친구라고 정의한 것 치고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냥 우리 파트너일 뿐인가. 시원하게 닿는 물줄기 속에서 그 질문은 머리 뒤로 넘어갔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너는 간단한 문자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친구야.
네 문자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선배들의 호출의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과대를 맡게 된 석민은 자신의 카톡 창에 선배들의 불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뒷말 나오는 걸 싫어해서 최선의 선을 찾아서 행동을 하던 석민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종강 파티를 하기 위해 과 사람들이 모였다. 언제나 그랬듯 순영은 석민의 작은 변화를 잘 캐치했다. 벌개진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석민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 것도 순영이었다.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하냐.”
“뭐가요.”
“진짜 이상해, 왜 다 맞춰 주냐. 너나 쪼꼬나 왜 그렇게 살아.”
순영의 말에 사람 좋게 웃어보이던 얼굴을 지웠다. 금세 굳어진 얼굴은 울음 섞인 표정으로 바뀌고 나는 원치 않게 들킨 속을 보이자 그동안에 쌓였던 게 터져 나왔다.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아, 찌질하다. 순영이 농담 식으로 말을 내뱉으며 제 옆에 앉아 어깨를 토닥인다. 민규와 이야기를 안 한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어디에 털어놓을 수가 없었기에 혼자 삭혔다.
“뭐 해요, 둘이.”
“어, 쪼꼬.”
고개를 들자 전에는 볼 수 없던 민규의 굳어진 얼굴을 봤다. 야. 작게 내뱉는 목소리에 시선을 피했다. 너는 왜 자꾸, 시발. 작게 욕을 하던 민규는 제 팔을 잡고 일으킨다. 야, 울어? 제 얼굴을 자꾸만 마주치려는 얼굴이 싫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야, 나 좀 봐. 목소리가 애처롭게 끌린다. 것도 모른 채 나는 순영의 팔목을 잡았다. 쪼꼬야, 그만. 민규의 어깨를 밀어내는 순영의 손을 쳐낸다. 싸해진 분위기 틈에서 선배들이 나온다. 각자 담배를 입에 물고 나오던 민규는 쪼꼬야, 찾는 목소리에 금세 표정을 지운 채 선배들 틈에 낀다.
“네가 딱 저 꼴이다.”
순영은 짐을 따로 챙겨 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순영의 배려에 석민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방학을 시작하고 순영과 붙어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자취방에 놀러오는 빈도가 민규보다 순영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점차 민규의 생각에 복잡한 머리가 비워질 때쯤, 연락도 없이 민규가 찾아왔다. 굳이 사이에 껴 셋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곧 몰려드는 과 사람들 틈에서 민규는 저와 대화를 몇 번 나누지 못한 채 밤이 돼서야 겨우 선배들을 보내고 대화를 텄다.
“너 순영 선배 좋아해?”
민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시선 속에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딱 저 꼴이다.’ 순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술에 달아오른 쪼꼬의 볼이 발갛다. 동족혐오. 나는 김민규가 어렵다. 선배들 틈에서 민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도 나는 낄 수 없었다. 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너는 내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쪼꼬야.”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우리 섹스 할래?”
“야.”
“쪼꼬야, 우리 하자.”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진 건지, 아까와 다르게 목까지 빨개진 너는 내게 생전 처음 보여준 얼굴을 하더니 금세 나를 지나쳐 집을 나섰다. 나는 이제야 보게 되었다, 너의 본 모습을. 그대로 주저앉아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야. 쪼꼬 휴학 했다. 순영의 카톡에 석민은 터져 나오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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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민규와 섹스를 했다. 서로 그리워한 만큼 서로를 어루만졌다. 담배를 배워서 누렇게 변한 천장 벽지를 보던 석민이 고개를 돌려 민규를 봤다. 입에 담배를 문 채 매트리스 위에 앉아 있는 민규는 선풍기의 바람세기를 높였다. 더욱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선풍기를 보던 석민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순영 선배 휴학한대.”
“들었어, 아쉽냐.”
“응, 많이.”
“야. 너 아직도 권 순영 선배 좋아하냐.”
... 아니. 사실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옆에 누운 네가 나를 본다. 네 주변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담배 안 피운다며. 내 물음에 원래 폈어. 라고 말하는 네가 좋았다. 사실 나는 네가 좋았다. 다정하게 저를 만지는 투박한 손도 좋았고, 섹스 중 열에 달 뜬 목소리로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네가 좋았다. 부정했던 건, 어린 내 자신이 아직 너에 대한 마음을 몰라서, 속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서, 너보다 나를 먼저 안 순영에 대한 동경을 사랑이라 착각해서. 근데 있잖아, 나는 너를 좋아하는 거 같아.
“쪼꼬야.”
“엉.”
“이제 나한테 쪼꼬라고 불리는 거 안 싫어해?”
네가 남들과 다르게 날 대했던 건 나를 좋아해서, 동족혐오라고 꺼냈던 말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오해했던 것.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턱을 괴고 나를 보던 네가.
“네가 부름 다 좋아.”
작게 속삭이곤 제 위로 올라탄다. 네 두 볼을 잡아 입을 맞췄다. 매미가 여름을 알렸다. 맴맴 우는 소리가 제 귀를 때린다.
민규야.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