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워서 그래
W. 모어
민규는 별안간 자신의 얼굴로 날아든 수건을 신경질적으로 걷어냈다. 스케줄이 끝난 뒤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뿐인데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석민이 다짜고짜 민규의 얼굴로 수건을 던지더니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민규는 알 수 없는 석민의 행동에 거실 쇼파에 누워있던 지훈에게 물었다.
"쟤 요즘 뭔일있어?"
"누구?"
"이석민말야."
"도겸이가 왜?"
무심한듯 시선을 핸드폰에 고정한 채 건성으로 반응하는 지훈에 민규는 입을 다물었다. 도겸이 어제 기분좋게 녹음 잘하고 갔는데? 이어서 돌아오는 지훈의 말에 민규는 석민이 던지고 간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말을 말자. 안그래도 컴백준비로 녹음실에 살기 바쁜 지훈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쟤 왜 이렇게 까칠하지? 요즘들어 부쩍 예민해진 석민때문에 민규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평소 바보같다,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석민이지만 예민할 때는 또 한껏 예민해지는 그였다. 근데 그 예민함이 유독 자신에게 한정되어있는 건 기분 탓인가? 석민과 자주 대화를 나누던 정한을 찾아가서 물어보기엔 왠지 자신이 말려들 것 같아 금방 포기하고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며 민규는 대수롭지 않은듯 침대에 누워 노곤했던 하루를 정리해갔다.
쏴아-
자신에게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석민은 생각을 멈추려고 애썼다. 차갑게 내려오는 물방울들이 꼭 저에게 정신차리라는 의미로 자신을 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프네. 근 몇 달 동안 석민은 혼돈의 카오스를 겪고 있었다. 사춘기도 별 탈 없이 지나갔건만, 21년만에 찾아온 성정체성의 혼란과 친구에게 느끼는 감정을 갑작스레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 같은 멤버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다는 건 21년동안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이석민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하나씩 다가와도 힘든 문제들이 마치 정답 없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었다. 인정하기 힘든 문제가 무려 2개나 몰아닥치니 석민은 요즘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괜히 민규만 보면 밉고 짜증부터 나가는 탓에 오히려 곤란함을 느끼는 건 석민의 쪽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민규만 보면 얼굴도 괜히 수줍열매먹은 사람처럼 붉어지려하니(심장도 빨리 뛰는 것 같다) 그걸 감추기 위해서 석민은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자그마치 7년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같은 팀의 멤버로 함께한지 약 7년. 이제는 햇수를 따지기도 뭐한 막역한 사이인데. 민규가 좋다. 많은 생각들이 오가고 애써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은 석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샤워를 끝마쳤다. 평소 이렇게 오랫동안 씻는 멤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
이건 분명 여름이라서, 날씨가 말도 안 되게 너무 더워서 그래. 처음에 석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대한민국을 덮었고 날이 더워서 제 자신이 어딘가 정신 나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같은 남자의 몸을 보고 심장이 두근거릴 리가 없으니까!
평소 숙소에서의 생활을 보면 흔히 윗옷을 벗은 채 다니는 멤버들 반, 티셔츠를 꼭 챙겨 입는 멤버들 반으로 나눠졌다. 행여 감기가 걸릴세라 티셔츠를 챙겨 입는 본인처럼 민규도 그런 멤버들 중에 하나였다. 얼마 전까진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체력증진을 빙자한 몸키우기가 시작되었고, 리더형을 앞세워 팀 내에서 몸키우기 열풍이 불어닥쳤다. 저를 비롯해 보컬팀 멤버들은 감성적인 이미지를 내세우고자 회사에서 지침이 내려왔기에 근육을 키우는 멤버는 없었지만. 같은 남자의 몸이 좋아봤자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석민은 점점 자라나는 민규의 근육만큼 짧아지는 티셔츠의 비례함에 절망했다. 다른 멤버들은 민규가 근육이 잘붙네! 부럽다 했지만 본인은 그 근육에 두근거릴 줄이야.
민규가 근육을 키우기 시작하고 점점 좋아지는 몸을 보며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안 그래도 본인을 비주얼 꿈나무라 칭할 정도로 어디를 가도 외모로 꿀릴 남자가 아니었지만 몸이 좋아지니 끈적이는 시선들이 예전에 비해 배로 늘어났다. 바로 지금처럼. 노골적인 시선과 대쉬를 받는 일이 더 늘어났고, 석민은 그걸 옆에서 계속 지켜봐야했다.
“민규씨~ 잘 지냈어? 이번에 자기네 팀, 노래 너무 좋더라~”
“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대놓고 민규의 팔뚝을 만지작거리는 여자를 보니 속이 다 울렁거렸다. 콧소리가 잔뜩 섞여나오는 목소리에 석민은 금방이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민규는 능청스럽게 선배의 말을 잘 받아내고 있었다. 뭔가 봐서는 안될 것을 본 찝찝한 기분에 얼른 이 자리를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선배는 벌써 민규의 번호를 물어보고 있었고 속옷이 훤히 보일 정도의 짧은 무대의상을 입고 자기보다 어린 후배에게 민규는 요즘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아?라 묻고 있었다.
“어? 석민아! 벌써 우리 리허설 할 시간인가?”
못 본 척 재빨리 지나가려던 석민을 발견한 민규가 석민의 어깨를 감싸왔다. 얼떨결에 마주친 여선배에게 석민은 후배로써 깍듯하게 인사를 건냈다. 석민의 등장에 여자는 당황했지만 프로처럼 불쾌함을 지우고 방긋 웃어보이며 인사를 받았다. 민규는 최대한 곤란하다는 듯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만 가보겠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석민은 선배에게 인사를 했으니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민규의 팔이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아와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민규의 팔(정확하게는 팔뚝)을 보고있자니 어쩐지 묘하게 설레었다. 여자선배는 다음에 연락하라며 콧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시야에서 선배가 사라지자 민규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네가 지나가서 다행이야.
그 말에 석민이 민규를 올려다봤고, 민규는 매력적인 송곳니를 내보이며 석민을 향해 웃어보였다. 여전히 둘은 어깨를 감싼 채 붙어있었고, 둘의 거리는 굉장히 가까웠다.
그날 밤, 석민은 숙소에서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고 자신의 어깨를 단단하게 붙잡던 민규의 팔을 생각하니 두근거리는 가슴에 잠을 설쳤다.
***
오랜만에 개인스케줄이 없었던 민규는 일단 지금 숙소에 누가 남아있는지를 빠르게 스캔했다. 단체 채팅방에 [지금 숙소에 있는 사람?]이라고 올리면 그만이지만, 누군가를 찾아 조심스레 물어볼것도 있었고 문제의 당사자가 대답할 수 있으니 섯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퍼포팀은 보나마나 연습실을 갔을테고, 다른 두 리더들도 회사에 나갔을게 뻔했다. 승관이는 개인 스케줄을 나갔고. 문제는 제 고민의 당사자가 여기에 있냐는 것과 정한의 위치였다. 둘이 같이 있으면 곤란한데. 민규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형 어디? 지금 숙소?]
[왜]
[물어볼거 있어서]
[오지마]
[ㅋㅋㅋㅋㅋㅋ]
아.. 또 이런다, 이 형. 순간 민규는 정말 정한에게 물어봐도 괜찮은가 싶었지만 최근들어 늘 붙어다녔던 둘이기에 누구보다 석민의 상태를 잘 알 것 같아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감정을 꾹 참고 대화를 이어갔다. 게다가 팀내에서 눈치가 가장 빠르기도 했고.
"뭔데."
"이석민말야."
자신의 메세지에 눈꺼풀 가득 피곤함을 담고 정한이 내려왔다. 누가봐도 '나 지금 피곤함'이 쓰여있는 정한을 보니 이거 진짜 말해도 되는 건가 싶은 민규였다. 이럴 땐 본론만 딱 얘기햬야한다. 내가 올라간다고 해도 먼저 내려온 사람이 누구더라. 민규 입에서 석민의 이름이 나오자 정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쌍방삽질에 왜 본인이 껴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한숨이었다. 문제는 둘 다 본인들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겠지.
"휴…. 겸이가 왜."
"요즘 뭔일 있냐고."
"그거 물어보려고 불러냈어? 톡으로 하지 그냥."
"형, 이거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거든?"
"너 아직도 겸이를 모르냐? 겸이 믿고 기다려~"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정한은 바로 윗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정한의 재빠른 행동에 아래층 거실에 민규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방금 정한이 던지고 간 말에 대해 혼자 생각해야했다. 이석민을 믿고 기다리라고? 뭘 기다리라는 건지는 말해줘야지! 정한은 뭔가 알고있는게 분명했다. 정한을 통해 답을 얻어내려던 민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후회했다. 실수했네. 물어보는게 아니었는데. 답은 얻지 못하고 민규의 머릿속만 더 복잡해졌다.
한껏 찌푸려진 민규의 얼굴에 지나가던 순영이 웃기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김민규, 너 얼굴 그렇게 막 쓸거면 나 주라."
"뭐래."
“뭐래? 이게 형한테! 원우야, 쟤 봐봐!"
뒤로 지나가는 원우에게 방금 김민규가 자기한테 어떻게 한줄 아냐며 순영이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사람은 민규였다. 오늘은 3주차 활동이 끝나고 콘서트를 위해 연습실에 다 같이 모인 날이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하는 멤버들 사이로 석민이 보였다. 제가 쳐다보자 또 시선을 돌리더니 옆에 있던 승관에게 말을 걸었다. 딱봐도 아무말이나 건내는 거 같았다. 활동 전에는 신경질적으로 굴더니 이제는 자신을 피하는 석민에 의해 민규는 요즘 잘먹던 밥이 안넘어갈 지경이었다. 자신이 이토록 석민을 신경쓴다는게 좀 놀랍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였고, 지금은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니까.
이 사실은 석민의 애교를 보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10분만 쉬자!”
스텝의 말에 모두들 자리에 주저앉았다. 몇몇은 땀을 식히러 갔고, 몇몇은 음료수를 마시러 갔다. 앉아있던 민규는 땀을 닦으며 시선을 앞으로 던졌고 석민과 우지가 제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지 귀찮아하는 우지의 옆으로 석민이 딱 붙어서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아아~혀엉~~~ 한 번만! 제발 우지형!!
이렇게. 어쭈, 이제는 팔짱까지 끼며 애교를 떠네. 민규는 제 시야에 들어오는 둘의 모습에 화가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시선을 돌리는데는 성공했지만 차마 귀까지 막지는 못했다. 계속해서 우지형을 부르는 석민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민규는 그 목소리로 인해 거울너머로 석민을 다시 바라봤다. 알고보니 어제 녹음했던 파트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내일 한 번만 다시 녹음하게 해달라는 얘기였다. 그런 얘기를 저렇게 귀엽게하면 어쩌자는 건지.
잠깐만. 화가나? 귀여워?
민규는 우지와 함께있던 석민의 모습이 화가났고 그런 석민을 보며 귀엽다 못해 가슴 한켠이 간질거리는게 이상했다. 여름이라 그런가. 올 여름은 진짜 너무 덥네. 민규도 본인이 더위를 먹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이건 오랜시간 알고지냈던 이석민이 귀여워서가 아니라 더워서 그런다고. 문득 민규의 머릿속에 지난 번 팬사인회가 떠올랐다. 하트를 만들어 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있었지만 민규는 그걸 듣지 못했고 석민이 ‘하뚜~’하면서 결국 하트를 만들어줬던 날을. 어느 시점부터 석민의 말투에 애교가 살짝 묻어나오는 걸 그 때는 몰랐었다. 애교스런 그 말투가 귀엽게 본인의 심장에 박혀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
***
석민은 민규와 같은 숙소인게 너무나 잔인했다. 차라리 떨어져 지냈다면 덜 했을까? 지난 번의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 늘어나는 민규의 개인스케줄만큼 석민의 불안감도 함께 증가했다. 층이라도 달랐다면 민규가 나가고 들어오는 걸 덜 알았을테고 덜 신경쓰며 살았을텐데. 괜히 또 여기저기 번호 받고 그러는건 아닌지 생각하니 또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지는 석민이었다. 아무사이도 아닌데 그저 친구이자 동료일 뿐인데 왜 이렇게 질투가 나고 싫은건지.
"오랜만에 데이트?"
"재미없다."
그러지말고 따라오시죠? 이석민씨?
간만의 휴일이었다. 밖에는 후덥한 날씨가 계속해서 이어진터라 석민은 어떠한 바캉스보다 홈캉스를 택했다. 뭐니해도 집이 최고지! 물론 숙소보다 엄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이 더 좋긴 하겠지만. 생각을 마치자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갈까 해서 석민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런 그의 움직임에 매트리스가 크게 출렁거렸다. 편하게 옷을 입고 매니저 형한테 연락하며 나가려던 순간, 개인 스케줄을 마친 민규가 들어왔다. 본의 아니게 현관에서 맞닥뜨린 상대에 석민은 크게 당황했으나, 그런 석민을 향해 민규는 여유있게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 따라갈 생각은 없었는데 지난 번 보다 더 단단하게 자신의 팔을 잡아오는 민규를 석민이 뿌리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민규는 자기 녹화끝나고 아무것도 못먹었다며 배고프다고 칭얼대면서 석민을 어디론가 끌고갔다. 도착한 곳은 숙소 근처에 있는 맛집이었다. 맛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민규가 석민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그만 인정하지?"
"뭘."
"나 잘생긴거."
그건 진작에 인정했거든. 얼굴존재감 하나는 확실한 민규가 본인 입으로 저렇게 말하니 석민은 기가찼다. 몰라서 물어보는건 아닐텐데 꼭 저런다니까. 뭐라도 반박하고자 입술을 열었던 석민의 입이 단 5초만에 다시 다물어졌다.
"그리고 나 좋아하는거."
민규의 말에 석민의 눈이 커졌다. 쟤가 뭐라고 내뱉는거야? 민규의 말에 놀란 석민은 하마터면 길 한가운데 주저앉을 뻔했다. 대신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지만. 앞서가던 민규가 제 옆에 석민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길을 다시 돌아왔다. 놀란 표정이 정말 귀엽다. 살짝 소리내서 웃은 민규가 석민의 어깨를 붙잡고 말을 이어갔다.
“나 이런 거 돌려서 못 말하는거 알지?”
“.........”
“나도 너 좋아해. 친구아니고 같은 멤버로서도 아니고, 이석민 자체로.”
"와- 날씨 진짜 미쳤나봐."
"밖에 더워?"
"어. 진짜 더워. 너 나가지마."
"더운날 개인 스케줄하느랴 고생했네, 우리 민규."
투덜대며 들어온 민규에게 석민은 수고했다며 갈색펌이 되어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아지를 만지듯 애정담긴 손길이었는데, 그의 손길에 당황했는지 민규는 야,야.. 잠시만.하며 잠깐 뒤로 물러다더니 석민의 가는 팔목을 붙잡고는 눈을 마주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힌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숙소가 고요해서 그런지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쑥스러운듯 얼굴을 붉힐 사이는 지난거같은데 여전히 민규를 이렇게 마주할 때면 석민은 유독 썸탈때처럼 부끄럼을 탔다.
"이석민 인생 가위바위보 진짜 잘했다."
"그게 무슨말이야?"
"독방쓰는거."
이렇게. 둘이. 같이. 있을 수 있잖아.
석민에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민규는 한 단어씩 힘주어 말했다. 석민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사이 민규가 석민의 방문을 굳게 잠궜다.
더한 것도 할 수 있고 좋네. 그치?
그런말은 좀!
민규에게 잔소리를 날리려던 석민은 자신에게 다가온 입술로 인해 다음 말이 먹혀버렸다. 후끈한 열기가 훅 끼쳐왔고 행여 감기 걸릴세라 틀지 않던 에어컨이 오랜만에 가동되었다. 석민은 여전히 감기에 걸리기 싫었지만 제 애인인 민규가 너무 더위를 타니까 이번만큼은 넘어가기로 했다. 여름 감기에 걸린다고 해도 챙겨줄 사람이 옆에 있었고, 당분간 본인은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니까 괜찮겠지.
이석민의 빅픽쳐였다며, 침대를 더 큰걸로 주문하지 그랬냐며 시덥잖은 말을 하는 민규 때문에 잠시 분위기가 깨질 뻔했지만 어쩌겠나. 저런 모습마저도 좋은걸.
올해도 유독 더운 여름이었지만, 두 사람의 계절만큼은 더없이 청량했다.
더워서 그래. - fin.